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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

마늘_마블 2017. 10. 28. 02:46

● ThePierced3moGirl °•



영면은 자신이 올 것이라 예고하지 않고 찾아온다. 첫눈처럼. 소나기처럼. 잠이 오는 것을 막는 것은 언제까지나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동면은 늘 찾아오는 것이지만, 이번은 느낌이 달랐다. 길고, 긴 잠이 될 것이었다. 나는 내 품에 안겨 잠든 네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는 혼자 남겨질 테였다. 영면은 죽음이 아니지만, 우리의 생명을 빗대어 본다고 해도 길고 긴 시간일 것임이 분명했다.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다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어쩌면 언젠가는 눈을 뜰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추측에 가까울 뿐, 날씨가 그렇듯이 나는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었다. 


너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야. 내가 잠든다고 말할까. 여태껏 널 보겠다고 잠들지 못한 시간들이 쌓여서, 날 완전히 집어 삼킨다고 말하면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하늘이 벌을 내려 그런 것이라고 말하면 너는 납득할 수 있을까. 어느 쪽이든 내가 다시 네 이름을 부를 수 없으리란 것은 완전한 사실이다. 내 눈을 덮은 천을 벗겨줄 이도 없을 것이고, 내 손으로 네 날개를 보듬어줄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문득 익숙해진 것들이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면서 잊는 것마저도 익숙해졌다 자부했지만, 완전치는 못한 모양이다. 내가 신이 되지 못한 점이, 바로 그 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낙화. 내 아이야."


나는 애달프게 네 이름을 불러 보았다. 네가 작게 대답하며 꼬물거린다. 네 눈이 졸음을 담은 채 뜨여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네 손으로 내 눈을 띄워주지 않는 이상, 나는 널 볼 수가 없다. 네 손이 차가운 내 뺨을 어루만진다. 나는 천천히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더. 더 자려무나.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다. 때가 아니야. 조금 더 좋은 꿈을 꾸어라. 조금만 더 행복하고, 조금만 더 안온하게. 


***


너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잠을 자야 한다고 말했지만, 너는 내 목소리에 담긴 무언가를 본 모양이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그 떨림을. 겨울이 깊어가기 전에 나는 잠이 들어야만 했다. 산은 험하고, 지독했다. 나는 너를 멀리 보낼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화야. 가거라. 멀리. 춥지 않은 곳으로 가 있거라."


너는 가기 싫다며 날 끌어안았다. 나는 그 작은 몸뚱아리를 미처 안아주지 못헀다. 천을 다급히 풀어내리는 손길을 느낀다.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눈은 지독히도 아름답다. 어여쁘다. 나는 네가 추워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눈을 감지 못했다. 하얀 여우털이 네 목에 감겨 있었지만 요력으로 차갑게 가라앉는 겨울은 자비롭지 않았다.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올려 보는 눈꺼풀이 쇠를 단 듯이 가라앉는다. 네 어깨를 움켜잡고 힘이 빠지는 거대한 몸뚱아리를 지탱하려 애써보았다. 차가운 눈밭에 뺨이 맞닿고, 나는 네 옷자락을 부여잡는다. 사안의 건너편에는 네 얼굴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수마는 네 목소리보다 빠르게 내 숨통을 틀어쥐었다. 아. 나는 긴 꿈을 꿀 것이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하얀 눈과, 그만큼 아름답던 너를 영면에 담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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