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가을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아끼는 찻잔이 깨졌고, 그 깨진 조각에 손이 베였다. 병원에 나가지 않는 날은 익숙하지 않은 무료함이 덧씌워지는 시간이었다. 늦잠을 잔다고 뒹구는 것도 한 시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머그에 새로 끓여 담은 커피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뉴어리. 언제까지 누워있을 생각이야."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 쓴 물체를 툭툭 건드렸다. 작게 앓는 소리가 네 마른 입술에서 비어져 나온다.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천이 영안실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천을 걷어내린다. 네 머리카락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는 손길은 이제 익숙하다. 연인의 것을 보듬는 것처럼 다정한 손길은 아니지만, 그래.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과 비슷했다.
우린 몸을 섞고 같이 잠을 자며 같은 공간을 공유했다. 너는 오랜 시간을 내 시야 안에서 보내버리는 동안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녹아들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지는 찻잔이 하나에서 두 개로 늘었고,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던 집에서는 가끔 사람이 뒤척이는 소리가 나곤 했다. 약에 취해 늘어지는 너를 보고 있는 것도 그렇게 지루한 것은 아니었다. 병원의 사람들은 가끔 드러나는 그 점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고 있지만, 불만 정도로는 의사의 측근 어시스턴스를 해고할 만한 사항이 되지는 못헀다. 네 하얀 손에 피가 묻는 시간을 기억한다. 일에 있어서는, 우리는 왼손과 오른손이 깍지를 끼는 것처럼 잘 들어맞았다. 작은 취미생활에 네가 들어온다고 해서 방해가 될 점은 없었다. 오히려 귀찮은 점을 따로 처리할 수 있어서 더욱 편했을 뿐. 머리가 좋은 조수는 늘 유용했다. 지나치게 딱 들어맞는 것은 어떤 면에서 진득하게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켰다. 비록 그의 취미가 어떠하든.
라오 선생님. 네가 똑바로 서서 나를 부를 때면 가끔 희열이 느껴지곤 했다.
네 눈동자가 반쯤 뜨인 눈꺼풀 사이로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이 그 뒤를 따라왔지만, 그 안의 기분이 정말 유쾌한지는 모르는 법이다. 우리는 표정 안에 들어있는 감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나 혼자서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거의 웃지 않는 편인 나로써는 네 헤실거리는 얼굴은 늘 경계심을 조금씩 불러내곤 했다. 나는 완전히 널 믿지 않는다. 나는 내 스스로조차 믿지 않기에, 감히 다른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한다고 하지 못했다. 수많은 동업자들이 있었지만, 그 인연들이 그리 오래 간 적은 손에 꼽을 것이었다.
"커피로 줄까. 아니면 우롱차?"
너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무언가에 취한 듯 이불을 끌어올린다. 나는 이불 밖으로 빼꼼히 나온 마른 손끝을 보고 생각한다. 우리 사이의 관계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쓸모가 있는 실타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