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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보 말인데요, 매니저. 너무 노골적인 장면은 안 넣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레이븐은 곤란하다는 듯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얼마 전에 광고 겸 화보를 찍은 결과가 꽤나 잘 나왔다며 사람들은 칭찬했지만, 어째 탐탁치 않았을 뿐이었다. 속옷 광고까지야 그렇다고 치자. 다만 넣지 말자고 한 컷까지 멋대로 실려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번 화보들을 가지고 여성 모델과의 관계를 추측하려 드는 파파라치 기사들도 지독하리만큼 쏟아져 나왔다. 곤란한데. 곤란해. 우선 그가 돌아오기 전에 대충 치워둬야지. 한숨이 절로 나오는 해질녘이었다.
외출 때문인지 제 연인이 꽤나 늦은 시간에 귀가한 날이었다. 비가 추적대면서 내리는 밤. 당신 몪으로 남겨둔 파스타가 식어 갔다.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책을 읽던 손가락이 여지껏 한 장은 제대로 못 넘기고 있었다. 아. 드디어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파에 앉아있던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현관으로 뛰어나가 문을 열었다.
"싱. 어서 들어와요.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어요. 밖에 비가 오는걸. 젖지는 않았어요? 씻고 와요. 차를 끓여 줄게요."
"아. 으응."
제 품안에 꼭 안겨 있는 제 연인은 여느때와 다를 바 없이 사랑스러웠다. 오늘 따라 조금 축 처진 목소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마 날씨 탓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당신의 뺨이 차가웠다. 빗방울의 향기가 아슬아슬하게 당신의 코트 자락에 매달려 있었다. 그 차가움과는 다르게 제 입에서 나오는 말들엔 조금의 그리움과 짙은 애정이 배어있었다.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연락도 안 되고, 해서. 따듯한 홍차의 향기가 찻잔 안에서 맴돌았다. 당신이 받아들기만을 기다리면서.
"레이븐."
제 이름을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가 아름답다. 그러나 감각 어디선가 불길한 촉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화보, 잘 나왔던데."
"....."
당신이 무심결에 내뱉은 말은 무거운 추가 되어 몸을 내리눌렀다. 아. 그거. 그러니까, 내가 넣지 말자고 한 것까지 들어가 있어서... 그 매니저가 안 그래도 미안하다며 아까 사과는 해 왔는데.. 변명이 늘어난다. 당신이 푹 가라앉은 이유가 잡지에 실린 쓸데없는 기사 때문인 것도 알고 있었다. 순간 당신과 나 사이에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다. 오 이런. 싱. 지금 그 기사 때문에 축 처져 있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찻잔을 잠시 밀어두고 당신을 꼭 끌어안았다. 똑같은 바디워시의 냄새가 향기롭게 코를 간질인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싱. 기자들이 늘 물어뜯고 싶어하는게 뭔지."
질투로 조금 시무룩해진 당신을 바라보았다. 아. 사랑스러우면서도 그 기분을 다시금 북돋아주고 싶어 어쩔줄을 모르겠는데, 그저 당신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걸로 말을 대신했다. 당신의 뺨과 입술에 몇번이고 키스하며 당신의 이름을 속삭였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의심하지 말아요. 아이를 달래듯 그대로 당신을 안은 채 침대에 무너지듯 누웠다. 그 기사가 조금 자극적으로 쓰여진 부분도 있었어요. 내가 프리랜서라니까 자기들 입맛대로 고치려는 것 같았대도. 아직 젖은 머리카락을 슬슬 쓰다듬으며 당신을 달랬다. 질투하지 말아요. 난 당신을 사랑하는 내 자신에게도 질투하기 바쁜데, 그 시간에 날 더 사랑한다고 말해 줘요.